자금성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궁의 구성은 경복궁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아마 당시에 동일한 사상에 입각하여 정치를 운영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천안문을 지나서 들어오면 바로 아래와 같은 문이 나옵니다. 이 문이 그렇다고 하여 입장을 체크하는 문도 아닙니다.
위 문을 지나는 입구입니다. 벽이 상당히 두터운 것을 보니 침입을 막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나무가 심어 있지만 옛날에는 자객을 염려하여 나무조차 심지 못하게 했다 합니다.
위 문을 통과하여 나오면 아래 사진과 같이 오문(午門)이 다시 나옵니다. 여기가 표를 받는 곳입니다. 건물을 보면 일자가 아니라 ㄷ자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서도 군대가 지키면서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겠지요.
午門의 문은 모두 세 개인데, 경복궁 등 우리나라 고궁이 그러하듯이 가운데는 황제가 다니는 문이라서 조금 더 높게 만들고 좌측은 문신, 죄측은 무신이 다니도록 했을 것입니다.
입구를 통제하기 위한 것치고는 상당히 위압적인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午門을 통과하면 太和門이 나옵니다. 바로 우리나라 근정전에 해당하는 太和展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 앞에는 무섭게 생긴 해태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太和門 안에서 본 太和殿의 모습입니다.
太和殿은 본채가 있고 양 옆으로 뒤의 건청궁(乾淸宮)으로 통하는 문이 웬만한 궁궐만한 크기로 양쪽에 있습니다.
황제가 다니던 길은 보존하기 위해 통행을 금지시키고 있고, 양 옆으로만 다닐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太和殿의 측면에 있는 건물들입니다.
太和殿으로 오르는 계단 사이에는 이렇게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太和殿 지붕에는 우리나라 궁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용두와 잡상들이 있습니다.
앞에서 문들을 통과할 때 문의 이름을 가로로 쓰지 않고 세로로 썼던 것처럼 궁의 이름도 세로로 썼습니다.
太和殿 안을 들여다 봤습니다. 황제의 옥좌에는 양 옆으로 학이 지키고 그 앞에는 향로가 놓여 있었습니다. 계단에는 용의 무늬가 있군요.
그 안에는 본래 많은 보물들이 있었겠지만 장개석 정부가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에 패배하여 대만으로 물러갈 때 대부분 가져가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저 비어 있는 궁궐이라고 해야겠지요. 물론 남겨 두었다 해도 여기에 보관하지는 않겠지만요. 어쨌든 중국의 문화유물(보물)을 보려면 대만으로 가야겠네요.
太和殿을 우측으로 돌아가보니 커다란 쇠그릇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은 경복궁에도 있는데요, 혹시 불이 날 경우 불을 끄기 위해 가까이 물을 담아 놓아 두었던 것이지요. 목조건물이다 보니 화재에 취약하므로 경험 상 이렇게 해야겠다고 알았을 것입니다. 쇠그릇 아래에 보면 아궁이가 있어서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도록 불을 지폈다 합니다. 이렇게 옛날에도 위험에 대비하여 만전을 기하고 있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이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太和殿에서 太和門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다음 사진은 太和殿을 우측으로 돌아서 뒤에 와서 주변의 풍경을 담아봤습니다. 경복궁과 달리 주변에 고층건물이 보이지 않아 고궁이 현대건물에 위압당하지 않고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